스페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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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역사

2. 지역주의

3. 음식

4. 종교

5.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

6. 스페인 사람들의 특성

7. 문화 및 관습

8. 축제

9. 투우

10. 플라멩꼬

본문내용

폭죽소리를 들은 후에는 어느 누구도 토마토를 던져서는 안된다. 그러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전투를 끝낸 사람들이 옷을 입은 채 마을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샤워장에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다시 광장으로 올라가면 모든 게 깨끗하게 청소되어있다.
9. 투우
신화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황소를 스페인에 가져간 인물로 여겨진다. 헤라클레스가 자기의 사촌의 명에 따라 에리띠아 섬에 있는 게리온의 소를 훔쳐서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의 따르떼소스를 지나왔는데, 후에 헤라클레스가 스페인에서 받은 후대에 답례하기 위해 소 몇 마리를 스페인에 되돌려 보냈다고 하며 그 후 크리사오르왕은 매년 헤라클레스에게 바치는 황소의 희생제의를 스페인에서 확립시켰다고 한다. 지금도 스페인에서 흥행하는 누우는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희생제의를 대중축제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스페인에서 투우가 벌어지느 기간은 공식적으로 산 호세의 축제 3월 19일에 시작해서 스페인계 문화의 날인 10월 12일에 끝난다. 실제 투우의 시작은 주로 부활제의 일요일, 세비야의 대투우장에서다. 투우 시작 시간은 스페인에서 한낮의 태양이 가장 강렬한 오후 3시이고 한여름으로 접어들면 5시로 변한다. 투우에선 한 게임에 6마리의 소가 죽어나가고 투우사는 3명으로 한 투우사 당 2마리의 소와 대결하게 된다. 각 투우사는 자기에게 속한 3인의 보조 투우사를 두는데, 이들은 투우 순서상 말을 타고 나와 소의 잔 등에 창을 꽂는 삐까도르(창 찌르는 사람)와 투우 모래판에 맨몸으로 소와 대면해서 소의 잔 등에 창을 한번에 2개씩 3번을 꽂는 반데리요(창잡이)이다. 주연 투우사는 투우 순서상 마지막으로 망토와 검으로 소를 요리하다 죽이는 투우의 꽃이다. 투우사가 망토를 몸에 가장 가깝게 휘둘러 500킬로그램이 넘는 검은 황소를 투우사의 몸쪽 정중간으로 달려오게 한 뒤 몸을 돌려 황소의 공격을 피하는 그 모습이 바로 투우의 백미이다. 투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투우사는 자신의 활약 정도에 따라 투우장을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한 바퀴 도는 명예에서부터 소의 귀를 한개, 또는 두개, 그리고 소의 꼬리까지 받는 영광을 맛본다. 이것은 최대의 영광을 상징하는 표식이다(19세기까지 자기의 목숨을 내건 자연과의 싸움에서 얻는 보상은 자기가 죽인 소 신체의 일부이거나 그 시체를 판 돈이었다). 대중들에게 받는 투우사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왜냐하면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의 승리, 민중의 승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투우사들은 거의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의 출세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우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민중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고 투우사는 그 민중을 대변한다.
10. 플라멩꼬
1) 용어의 기원
플라멩꼬라는 말의 기원은 정확하진 않지만, 이 말은 아랍어로 ‘도망 다니는 농부’라는 뜻의 ‘felag mengu'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플라멩꼬라는 새의 모습과 그 이름의 무용이 유사한 것에서 왔을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으며, 이 음악의 노래와 춤이 강렬하다보니 독일어로 ‘불길이 타다’란 뜻의 ‘flammen'에서 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2) 음악과 춤
플라멩꼬 음악과 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루어진 풍요롭고 다양한 문화의 결과가 빚어낸 값진 예술품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점령했던 무어족은 아랍 음악의 흔적을 그곳에 남겨 놓았고, 11세기경 비잔틴 가톨릭 종교의식이 스페인에 들어오면서 예배의식에서 불려졌던 노래도 가세를 했다. 마지막으로 15세기 중엽, 몽고족에게 쫓겨 인도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 지방쯤으로부터 스페인으로 들어온 집시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그들은 인도기원의 예술적 요소를 갖고 왔고, 그들의 타고난 방랑문화와 음악적 재능은 플라멩꼬 음악, 춤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우선 노래를 만들어냈고 여기에 손과 발로 만들어내는 리듬을 가미했다. 화려하며 즉흥적이고 기교적 성향의 집시 음악은 이렇게 무어족의 문화는 물론 유대가톨릭 문화 및 토착음악과 융화하면서 수백 년에 걸쳐 안달루시아의 지방음악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3) 깐 데 혼도(깊은 노래) - 인간 삶의 가장 어둡고 고통받는 면을 노래.
‘솔레아레스’ - 고독을 의미. 고립과 소외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노래이며 19세기 세비야에 있는 집시 지역(뜨리아나)에서 탄생함.
‘시기리야’ - 가장 심오한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 박해와 구속과 허망한 사랑과 인간의 전 지전능한 동반자인 죽음을 한탄하는 격정적인 영혼의 외침.
‘사에따’ - 화살이라는 뜻. 정해진 박자나 리듬이 없이 자유자재로 부르는 노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을 한탄하는 노래로, 성주간 때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상이 장례곡에 맞추어 스페인 도시 거리나 시골 마을을 돌 때 그 행렬을 보고 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사에따를 부르기 시작하면 행진하던 것을 멈추고 그 노래를 듣기위해 성상을 땅에 내려놓음. 이 노래만은 집시들과 연관되지 않은 것으로 스페인에 있던 유대인들의 예배의식 때 부르던 노래와 많이 닮음.
4) ‘노래가 있는 카페’의 출현
1840년대에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도시 등지에서 플라멩꼬의 대중적 수요에 맞춰 나타난 카페. 이는 일련의 플라멩꼬 가수와 무희, 기타 연주가로 구성된 플라멩꼬단을 탄생시킴. 그 이전의 플라멩꼬는 삶의 간주곡으로써 일상에서의 어느순간에서든 감정이 응축되면 가슴으로부터 터져나오는 그러한 것이었으나 노래가 있는 카페가 생기고 수요가 많아지자 플라멩꼬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들이 탄생될 수밖에 없었음. 특히 한정된 무대를 서로 점령하려다 보니 서로간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플라멩꼬의 진수를 모르는 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계산된 구경거리를 덧붙여 만들어나가기 시작함. 이렇게 되자 즉흥적 창조력과 무용가의 본능이 발휘될 겨를이 없으니 두엔데(혼 내림)도 올 수 없게됨. 결국 생명력 없이 반복적인 움직임만을 보이는 뒤틀린 플라멩꼬가 발생하게 됨.
*목 차
1. 역사
2. 지역주의
3. 음식
4. 종교
5.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
6. 스페인 사람들의 특성
7. 문화 및 관습
8. 축제
9. 투우
10. 플라멩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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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8.11
  • 저작시기2006.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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