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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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원도 답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강원도 기행



드디어 서울 출발!

「첫째날」 영월여행의 제 1경 선돌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강원남부 폐광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 카지노
한국의 그랜드 캐년, 통리 협곡
전설만큼 신비스런 비경의 환선굴
태백지역 화전민들의 삶이 담겨 있던 진정한 문화의 뿌리 너와집

「둘째날」 분주함과 평화로움이 교차하는 묵호항 어시장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 정동진
강원도의 국보 객사문
조선 시대의 관청 칠사당
고래등 같은 양반네 집 선교장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인구리 해안지형
어업의 소득증대를 꾀하는 양양 내수면 연구소
동글동글한 돌 핵석
다섯 개의 봉우리가 지켜주는 오봉리 민속마을

「셋째날」 빼어난 경관의 설악산
함경북도 노인이 61년 처음 시작한 용대리 황태 덕장
평온하지만 아픔이 있는 곳 펀치볼
분단의 아픔을 느끼는 을지전망대
안보 대응책으로 건설중인 평화의 댐
충신 신숭겸의 묘지
호반의 도시의 중심에 있는 춘천댐

강원도 지역 답사를 마치고...

본문내용

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와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걸쳐 있는 댐으로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이다. 길이 410m, 높이 80m, 만수위 221.5m, 최대저수량 5억 9000만t으로, 파로호 상류에 있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하자, 수공(水攻)과 홍수 발생시 하류댐의 피해를 예방하고 수도권에 상수원을 공급하기 위해 총 사업비 1,509억 원(국민성금 733억 원)을 들여 1988년 1단계 댐을 완공하였으며, 2단계 댐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추이에 따라 건설될 계획이다. 규모는 크지만 발전 기능과 인위적인 홍수 조절 기능이 없어 그 동안 댐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다가, 1995년과 1996년 집중호우 때 홍수 조절 기능이 입증되어 댐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평화의 댐 증축공사가 완공되면 저수용량이 기존 5억9000만t에서 26억3000만t으로 대폭 늘어난다. 하지만 임남댐이 완공돼 본격적인 담수에 들어감에 따라 장기적으로 한강 수계의 수자원 부족 현상이 불가피해졌다. 임남댐은 발전한 물을 하류로 흘러보내는 일반 댐과 달리, 터널을 통해 동해안으로 물을 흘려보내 발전하는 방식이다. 주변에 비목공원상설야외공연장수하리낚시터비수구미계곡 등 관광지가 많이 있으며, 철의 삼각지, 양구 펀치볼 전적비, 고성 통일전망대 등을 잇는 통일 안보관광지의 요충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충신 신숭겸의 묘지
날이 흐려질 오후 5시 45분에 도착한 곳은 신숭겸의 묘지이다.
태조 10년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어 전세가 위급하자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 신숭겸은 태조와 갑옷을 바꿔 입고 왕건을 탈출시킨 후 어차를 타고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여 집궁 공격하였으며,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후백제군은 왕건의 목인 줄 알고 신숭겸의 목을 베어 갔던 것이다. 그 후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공을 기려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후하게 장례를 지냈고, 금두상이 도굴될 것을 두려워하며 춘천, 구월산, 팔공산에도 똑같은 묘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이 곳에 봉분을 세 개나 만들었다. 그만큼 신숭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이다. 지금도 어느 묘가 신숭겸의 봉분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신숭겸의 충성은 고려는 물론 조선 때까지 충신의 표상으로 받들어졌다. 고려 16대 예종은 신숭겸, 김낙 두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도이장가'까지 지어냈을 정도다.
927년, 즉 태조 10년에 견훤이 신라를 쳐들어갔을 때에 신라는 왕건에게 구원을 청했습니다.
그때 왕건은 빠른 속도로 진군을 하다가 공산(대구 부근)에서 후백제군의 매복에 걸려 참패당하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김락이라는 장수가 왕건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싸웠고 신숭겸도 그와 함께 남아서 왕건이 무사히 도망가기 전까지 전선을 지켰다. 일화에 따르면 왕건이 타고있던 수레를 자신이 몰아서 왕이 있는것처럼 가장했다고 했다. 결국 신숭겸은 전사했다. 처음엔 능산이라고 하였지만. 훗날 신숭겸 이라는 이름과 성을 받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는 수도를 개성으로 해서 북부로 갈때 평산(황해도)을 지나쳐 갔다. 그때 기러기가 지나가자 왕건이..."저기 기러기의 왼쪽날개를 맞추어 볼사람 없는가?"라고 하자.. 능산이...자신이 맞춘다고 하였다. 그러고 기러기를 맞췄는데. 정확하게 맞자. 왕건이 감탄하면서.신씨 라는 성과 본을 평산으로 하여금 상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기 위해 "도이장가"와 "차전놀이"를 만들었다. 또 묘가 3개 있으신데. 황금마스크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둑이 들지 말라rh 3개나 만들었다고 합니다. 묘는 춘천에 있고 호는 장절공이다. 현재 신숭겸의 후손들이 묘지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호반의 도시의 중심에 있는 춘천댐
강원도 춘천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소양강댐과 경춘가도인데, 두 곳은모두 소양강과 연관돼 있다. 춘천은 호수와 강, 그리고 의암댐, 춘천댐 등물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여서 흔히 호반의 도시라고 불린다. 춘천 중심부엔 봉의산이, 소양강 쪽엔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강원도가 산과 숲으로만 형성되어 있다는 상식과는 약간 다르다.
마지막 답사 장소인 춘천댐은 차창밖으로 보았다. 잠깐 이었지만 댐의 용모를 갖추고 잇었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의 춘천댐. 면적 17km2로 저수량 1억 5000만t. 춘천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댐이 있으며, 1965년 2월에 완성된 이 댐의 물로 용량 5만 7600kw/의 발전기가 돌아간다. 춘천호에 담긴 물은 북한강 상류 지역을 호수화하여 멀리 화천군 파로호(破虜湖) 부근에까지 미치고 있는데, 호수 주위의 산수가 아름답고 댐을 중심으로 하여 호반에 유원지 시설도 들어서 있어서 휴양객이나 낚시꾼이 많이 찾는다. 관광도로도 개설되어 있다.
강원도 지역 답사를 마치고...
신숭겸의 묘지와 춘천댐을 마지막으로 서울을 향했다. 오후 6시가 되니 바람이 불고 날이 어둑어둑해지기시작했다. 그리고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지난 2박 3일간의 짧지만 뜻 깊었던 답사를 머리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항상 TV프로그램을 보거나 사진이나 책을 통해서만 접하는 지역이었다. 자주 가기에 망설여지는 지역인데 이렇게 답사를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 관찰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답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이 지역을 왔다면 가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관광이었을 것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 학술답사는 그냥 과 행사이므로 의무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위해 가는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답사지역과 더불어 답사한 곳에 대한 이해와 문제들이 있다면 고민도 해보고 결론도 지어보는 것처럼 지리학과 학생으로써 답사에 대해 지녀야 할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아니 훈련을 받은 것 같아서 귀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는 답사뿐만 아니라 어느 곳을 가든지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것 하나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을 가지고 그 동안 배운 지식을 가지고 신중히 관찰하는 자세를 가져야하겠다. 이 부분은 나 스스로가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키워드

강원도,   답사,   기행
  • 가격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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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15
  • 저작시기2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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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8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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