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대학교 관광과4학년 관광해설론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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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화해설(답사)계획
① 문화해설지(답사) 선정 및 이유
② 문화해설(답사) 선정일


2. 역사적 의의
-사전 조사 및 참고 자료


3. 문화해설(답사) 감상문


4. 문화해설(답사) 평가표


5. 사진 자료

본문내용

도끼·돌살촉·돌칼 등의 간석기류가 있습니다. 특히 팽이토기는 서북지방(대동강 유역과 황해도 일대)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농경문화인 팽이형토기문화가 중부지방(한강유역과 그 이남)까지 확산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둔산선사유적지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며, 이곳 갑천 유역이 얕은 구릉과 넓은 농토,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류가 생활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근의 괴정동 청동기유적, 석장리 구석기유적 등과 함께 이 지방의 선사문화의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월평동 산성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산1202
시대: 백제시대
크기: 둘레 총 약 710m
면적: 27,838m2
대전시 둘레를 잇는 산성들 중 중간에 자리한 월평동산성의 정확한 성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산성에서 정수장으로 향하는 능선에 5세기 후반에 나무로 만든 성벽이 만들어졌고, 6세기경에 이 목책(나무로 만든 성벽)자리에 나무와 돌로 쌓은 성벽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의 월평동 산성을 처음 쌓은 것은 6세기 말 또는 7세기 전반이며, 이후 신라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10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도 나오는 내사지성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에 보이는 ‘662년 8월에 백제의 잔적들이 내사지성에 모여 악한 짓을 했으므로 장군 열아홉 명을 보내어 쳐부수었다’라는 기록을 살펴보면 현재의 유성이 백제 때에는 노사지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유성현으로 바뀌었으니 월평동산성은 기록에서 말하는 내사지성으로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월평동 산성의 성벽의 흔적>
그리고 축조방법이 부여 나성(도성의 외곽을 둘러쌓은 성벽)이나 부소산성의 북쪽 성벽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어 현재의 산성이 만들어진 것은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토기조각(가로 약 6cm 세로 약 11cm)이 발견되었는데 고대문자 열 한자와 토기를 만들었던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었습니다.
<산성에서 발견된 유물>
자료 출처:
http://100.naver.com/100.nhn?docid=735575
http://blog.naver.com/byun6205?Redirect=Log&logNo=20042203577
3. 둔산 선사 유적지와 월평동 산성 설명과 느낌, 소감
1. 월평산성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전 지역의 유적지를 찾아 답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월평산성. 사비 도읍기 무렵 백제가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모양은 시루떡을 가운데 엎어 놓고 주변에 성곽을 안으로 쌓아 올린 모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1989년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7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 재정비되었다. 입구가 아파트 단지 뒤편에 있어서 찾기가 쉽진 않았다. 두 개 정도의 안내판이 있어 그 곳이 월평산성임을 알려주긴 했으나 전반적인 관리 상태는 좋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로 찾아봤었던 성곽의 돌들은 이미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풀에 뒤덮여 있었다. 월평산성임을 나타내주는 것은 단지 표지판 하나뿐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수풀에 둘러싸인 성곽을 찾는 것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대전에 있는 또 다른 산성인 보문산성은 정비해 놓고 꾸준히 관리해 깔끔한 외관을 보이는데 반해 월평 산성은 그런 면에서 좀 아쉬운 면이 있었다.
2. 선사유적지
그 다음 경유지는 둔산동에 위치한 선사 유적지.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의 유적이 한 곳에서 발굴된 곳으로 유명하다. 1991년에 충청 일보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으며 기념물 제 28호이다.
우선 처음 들어갔을 때 깔끔하게 잘 가꿔진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입구에 들어서 조금 걷다 보면 솟대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곳저곳 움집을 잘 복원해 놓아 한 눈에 보기에 편했다. 예전엔 움집 입구를 막아 놓지 않아서 들어가 직접 체험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모두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선사 유적지 내부에 공원처럼 벤츠도 놓여져 있고, 그리 큰 곳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가볍게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3. 느낌
평소 대전 지역에 있는 유적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발로 뛰어 유적지를 찾아다녔다는 것이 뿌듯하다. 굳이 역사 리포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더 나아가 우리 나라의 유적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며 조금씩이나마 역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4.문화해설(답사) 평가표
※날짜 : 10월 10일(금요일)
※방문시간 : 16:00 ~ 19:00
※단체원수 : 1인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참여할 수가 없었음)
※장소 : 선산유적지
※해설가 : 산성에는 해설프로그램이 없었고 선사유적지에는 프로그램이 있었 으나 너무 형식적이었고 해설가도 자리에 없었음.
(참고로 관계자에게 연락을 하니 소수는 불가능하다고함. )
※날씨 : 맑음
※자원해설에 대한 총체적 평가 :
대전광역시 문화재로 지정되어있고 사전에 문화해설이 가능한지도 알아 보고 갔어나 현실은 그렇치가 못한점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전문적인 문화 해설자 있는것 같지도 않았고 너무 미흡한 점이 많은것 같았다. 1평정도의 공간에 문화해설이라는 글자만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시민들의 왕래가 없어서 그런지 오래동안 운영하지 않는 느낌 이었고, 나름 시간을 내서 어렵게 찾아간 곳인데 너무 소홀하게 운영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에서 좀더 관심을 갔고 한명의 시민이 가더라도 친철하게 문화해설을 했으면 좋겠다는점을 많이 느끼고 왔습니다.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운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5. 사진 자료
<월평동 산성 안내문>
<기념비와 안내판>
<월평동산성 기념비>
<월평동 산성 두번째 안내판>
<솟대의 모습>
<솟대란?>
<움집>
<움집터>
<움집터 설명>
<고인돌의 모습>
<선사유적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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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01.25
  • 저작시기2008.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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