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미디어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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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대사회
1.1 메소포타미아
1.2 이집트
1.3 그리스와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
2. 중세사회
2.1 중세 수도원 도서관
2.2 대학의 형성과 도서관
3. 근대사회
3.1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3.2 계몽주의시대
3.3신문 잡지의 출현
3.4 공공도서관사상의 발전

본문내용

1. 고대사회
1.1 메소포타미아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 이후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4세기경에 이르기 까지 중동지역은 수메르인이라 불리는 종족이 지배하였다. 이들은 우르(Ur), 우르크(Uruk), 라가시(Lagash), 니푸르(Nippur) 등에 도시를 건설하고 번영을 누렸다. 수메르인들은 楔形文字(설형문자)의 창시자로서 설형문자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약 3000년 동안 고대 오리엔트지역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대표적인 문자이며 외교문자였다. 楔形(설형)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글씨를 대나무 펜이나 금속 펜 등 날카로운 펜으로 점토판에 새겼기 때문에 실제 쐐기로 찍어 쓴 것은 아니지만 마치 쐐기로 찍은 모양으로 나타난 데서 명명된 것이며 일명 쐐기문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설형문자는 처음에는 漢字(한자)와 마찬가지로 그림문자(회화문자)로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간소화되어 표음문자로 발전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설형문자는 약 1000자 정도이며 함무라비법전은 설형문자로 된 고대의 법전으로 알려져 있다. 수메르인에 이어서 기원전 15세기경부터는 셈족계통인 아키드(Akkadian)인들이 중동지역을 지배하였다. 이들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 왕국을 건설하고 중근동을 지배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이들 역시 설형문자를 사용하였으며, 그들의 문자는 인근 이집트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니푸르에서는 점토판을 소장한 대규모의 사원도서관과 고문서관이 발견되었는데, 점토상자가 벽을 따라서 목제서가에 보관되어 있었고, 목제상자들을 아스팔트로 감싸서 부식을 방지하였다. 또한 어떤 곳은 壁龕(벽감 : niche)을 따라서 점토판을 진열하였으며 어떤 것은 가지런히 묶여진 모습으로 발굴되었다.
근동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약 50만장의 점토판이 발굴되었는데 점토판의 모양은 장방형의 직사각형으로 앞면(내용이 기록된 면)은 볼록면, 뒷면은 오목 면이며 보관할 때는 뒷면 즉 오목편이 위로 드러나게 하여 파손을 예방하였다. 또한 오목 면에는 제목을 새겼으며, 소유주의 이름, 寫字生(사자생)의 이름을 새기고 어떤 경우는 점토판을 주의 깊게 다루라는 경고문을 써 놓기도 하였다. 한편 쓸모없는 점토판은 도로나 바닥의 보도블록으로 이용하거나 한곳에 쌓아 놓았다.
아시리아의 융성한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경으로서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Assurbanipal, BC 668- BC 627)왕궁의 발굴에 의하면 왕궁에 설형문자로 새겨진 점토판이 흙 상자에 보관되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점토판을 구별하는 식별표지가 있었으며, 점토판을 여러 개의 구획으로 배치하고, 각 구획에는 일종의 시각표지물인 소장 자료 목록이 있어서 장서를 분류하여 조직해 놓았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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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04.02
  • 저작시기2009.3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527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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