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개화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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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개화의 형성
1. 개화(開化)의 개념
2. 실학과 개화사상과의 관계
3. 임오군란 이후 개화파의 분화
Ⅲ. 변법개화파의 사상적 성격
1. 정치 사상적 성격
2. 경제 사상적 성격
Ⅳ. 맺음말

본문내용

상업부흥은 물론 공산품의 질적 향상과 이에 의한 공업진흥을 가져오리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인의 교육문제이다. 산업학교를 설립하여 유교적 덕목의 실천을 근대적 상업지식 습득을 위한 교육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가르치고, 근대적 상업지식 습득을 위한 교육을 하였다.
국가의 부국강병을 위해서 상업부흥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상업경제의 근대화를 꾀해야 하는데 도고체제와 같은 자유로운 경제발전을 억압하는 전근대적 상업구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도고행위를 부정하는 대신에 근대적 의미의 화시설립을 강조하였다. 그는 국가의 경제발전 및 산업부흥의 요인을 회사설립에 두고 말하기를, 대외무역에 의한 경제적 이득과 각종 기계와 물품의 제작과 인간사회의 편리한 방도를 도모하여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회사운영이라고 보았다. 회사경영에 있어서의 자본합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동시에 이를 통해 외국에 의해 침해될 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기반조성이라는 이중의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자본합작의 방법으로 근대적 회사설립 방식에 의한 주식회사의 투자형태를 제기하였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발행하여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판매하여 자본을 조달하였다. 그리고 회사설립에 있어 기간산업 부문의 경우는 회사설립은 물론 주식공모에 있어서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다음으로 유길준은 화폐유통 및 발행에 의한 경제구조의 개혁을 강조하였다. 상업경제의 진작을 위해서는 상업구조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하고 다시 이를 위해서는 상품유통의 매개체인 화폐유통 구조의 체계화가 선행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17세기 후반부터 화폐경제체제로의 변화를 걷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원활한 화폐유통에 의한 화폐경제체제는 수립되지 못하였다.
당시 개항 이전의 화폐주조 상황은 18세기 후반 이후 특권적 공장제수공업에 의한 사영주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대자본가인 부민상공업자가 소정의 세금을 납부하는 형태로 정부와 결탁하고 자기자본을 투입하여 주전사업을 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부의 주도하에 일원화되어야 하는 화폐가치체계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다. 대원군 집권기에도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당백전을 다량 주조 발행함으로써 화폐유통의 혼란이 심화되었고 1883년 이후에도 당백전 등 화폐발행이 계속되었으므로 명목가치와 실제 통화가치와의 큰 격차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때문에 화폐가치의 무질서 현상은 국가재정의 안정은 물론 상업경제 발전을 위한 상업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도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과제였다.
이에 유길준은 화폐의 사영주조를 금지하고 정부주도에 의한 일원화된 화폐발행을 주장하였다. 그는 화폐란 국가의 대권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일개인에게 주조하도록 허가해서는 안되며 또한 개인의 능력으로 수행하기도 어려운 것이라 하였고 사주에 의한 분란과 위조의 방지를 위하여 중앙정부의 주도하에서만 화폐를 주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화폐발행에 있어서 균일한 가치와 정교한 주조는 국가와 국민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이것을 요체로 하는 화폐제도의 정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고 정부주도하의 화폐발행에 이어 화폐제도의 정리방안으로 금은을 화폐의 근본척도로 하는 금본위제도의 채택을 주장하였다.
아울러 금은을 화폐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나 중량화폐로서의 유통의 불편함과 재난(災亂)에 의한 국가적 재정손실의 위험성을 내세워 정부주도하에 화폐를 발행해야하며 발행을 위해서는 정부주도의 근대적 은행의 설립이 전제되어야 했다. 이리하여 그는 국립은행 설립을 주장하였고 국내 각 도시에 국립은행을 설립하고 일본인을 고문으로 삼아 화폐정리에 관한 업무를 시행하되 일본인에게 실권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부가 지폐를 발행할 경우에도 발행권의 액수 만큼 은행에 여유분의 돈을 비축해 두는 것이 정당한 이치이고 그것은 정부의 신용을 전제로 하는 만큼 정부는 화폐발행 시 국민에 대한 시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Ⅳ. 맺음말
개화의 형성에서 변법개화파가 형성되고 변법개화사상가들의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이론들을 알아보았다. 위의 내용들은 다시 정리하면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법, 유길준, 홍영식 등을 중심으로 한 변법개화사상가들은 일본 유학, 망명 등으로 일본과 서구의 선진문물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수용하여 적용하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이론들을 제시하였다. 특히 변법개화사상을 이론으로 체계화한 유길준의 이론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민권신장론과 법부인권론을 제시하였고 대외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주 국권 수립을 위해 천부국권론과 법부국권론을 제시하여 세계 속에서 국가 대 국가로써 국가의 기본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근대식 정치 체제인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면서 근대적 조세 제도를 수용하여 지세를 개정하고 호조의 부패를 줄이기 위해 재정의 일원화, 상업발달을 위해 회사를 설립하여 자본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변법개화사상가들의 근대 국가 수립론은 한국 사상 최초의 근대적 변혁사상으로 근대 민족주의 운동, 민권주의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국한문혼용체로 된 『서유견문』과 같은 서적을 발간하여 서구 사상의 수용과 보급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변법개화사상가들의 정치 경제적 방향은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활동, 애국계몽운동 등의 근대 개혁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반면, 일본에 의지하여 근대 개혁을 추진한 점에서 반외세 자주적 측면의 한계를 가지고, 민권신장을 제시하지만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변법개화사상가들의 근대 국가 수립론은 대외적 위기가 고조된 시기에 등장하였기 때문에 민권신장보다는 국권신장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참고문헌
유길준 개화사상의 연구, 김봉렬, 경남대학교출판부, 1998
한국근대 개화사상과 개화운동, 한국근현대사회연구회, 신서원, 1998
개화파와 개화사상 연구, 이광린, 일조각,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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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1.27
  • 저작시기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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