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8세기말엽의 유다 예언자들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주전8세기말엽의 유다 예언자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A. 8세기 말엽의 유다 예언자들

1. 국가의 위급한 사태와 예언자들의 메시지
1) 유다의 정신적 위기
2) 예언자 이사야: 생애와 메시지
3) 그 후의 이사야의 활약과 메시지
4) 미가의 메시지
2. 예언자들의 설교의 효과
1) 예언자들과 국가신학
2) 예언자들과 개혁운동
3) 예언자들과 민족의 희망

B. 주전 6세기 유다말기의 예언자들

1. 위기에 직면한 국가신학
2.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와의 문제
3. 예언자들과 이스라엘 신앙의 존명

1) 야훼의 심판을 선포한 예언자: 예례미야
3)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미래

본문내용

A. 8세기 말엽의 유다 예언자들

1. 국가의 위급한 사태와 예언자들의 메시지
8세기 말엽에 스스로의 임무를 수행하며 끊임없이 나라가 위급해졌다고 경고의 소리를 외친 예언자들에 관해서 이 시대의 유다역사를 매듭짓지 않고서는 역사를 불완전하게 살피고 넘기는 셈이된다. 왜냐하면 이 예언자들은 확실히 유다의 어느 왕보다도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유명한 예언자는 이사야와 미가 두 사람이다.

1) 유다의 정신적 위기
이 예언자들의 역할을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유다가 직면했던 위기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다는 아시리아의 침략이라는 물리적 위협만은 아니고 거기에 수반하여 빚어진 정신생활면에서의 위급한 사태였다. 이것은 민족의 특성과 종교를 뿌리부터 위협하였다. 이 같은 풍조는 아하스가 아시리아의 신들을 인정하고 공경의 예를 갖춘 뒤로 해이된 시절에는 더 극심해졌다. 이스라엘 민족사회의 원초적 기반이었던 시나이 계약과 거기에 수반된 엄격한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의무들을 대부분 잊어버린 유다 백성들이 많았었다. 야훼는 백성들이 제의적 관례들을 지키면 그 보답으로 백성들을 보호하고 축복해주는 역할이나 할 따름인 한낱 민족수호신으로 여겨졌던 것이다.(사 1:10-20)
다른 원인도 있었다. 유다의 왕정은 예전의 모세 계약에 의거하지 않고 야훼가 다윗과 맺은 영원한 계약에 의해 그 합법성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야훼가 시온을 거처로 선택하고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였다는 것, 그 왕들은 각기 ‘아들’로서 그 원수들에게 결코 패하지 않도록 보호를 받으리라는 것, 이 왕조는 마침내 다윗 왕국보다 더 광대한 왕국을 차지하고 지사의 뭇 왕들이 아첨하며 복종하게 되리라는 것( 시 2:7-11; 72:8-11), 이런 교지들이 믿어지고 또 제의상으로도 확인되었다. 그런데 8세기 말엽의 사건들은 유다의 공식신학에 마치 엄청난 눈사태와도 같은 무서운 충격을 주었다. 국가와 왕조의 존립이 위태로와지자, 국가에 관한 이데올로기에 본질적으로 의문이 제기되었다.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은 정말 신뢰할만한가? 만약 아시리아가 이 나라를 모욕적으로 우롱할 수 있다면, 또 아시리아의 신들이 야훼의 집으로 이사해 들어올 수 있다면, 당신 약속을 이행하리라던 야훼의 권능에 대해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유다 백성의 반응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견해로 갈라졌다. 하나는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신뢰이고, 또 하나는 겁을 집어먹은 불신앙이었다. 다시말해서 한편으로는 유다가 비록 어떤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야훼는 유다에 대한 당신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리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서 어떠한 결과가 올른지는 생각지도 않고 국가를 저돌적이고 자살적인 반란으로 몰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또 한편에는, 아하스처럼 국가신학에 의거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사 7:1-17) 자진해서 아시리아의 앞잡이가 되는 것 외에 달리 유다를 구할 길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쨌든 아시리아에 복종한 결과 비참한 처지에 빠졌을 뿐이었다.

2) 예언자 이사야: 생애와 메시지
이스라엘이 그 전역사를 통해 배출한 인재들 가운데 이사야 보다 더 위대한 인물도 별로없다. 웃시야가 죽던 해에(742년)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소명을 받은 후로(사 6:1) 무려 40년간이나 비극과 위기가 중첩했던 암담한 시기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열성적으로 민족을 이끌어나갔다. 그가 쉽게 왕에게 접근하곤 했던 사실로 미루어, 상당한 명문출신이었다. 이사야는 소명을 받았을 때의 환상체험(6장)에서 무서우리만큼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야훼의 거룩함으로 심각한 민족의 죄에 숨막힐 듯한 중압감을 느끼고 지난날 아모스가 취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규탄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설파하였다. 당시 권력을 잡고 무도한 짓을 일삼던 퇴폐적인 상류계급은 방자하게 물질적 재산과 향락에만 관심을 가지고(3:16-4:1), 외국식 유행이나 따르고 도덕적 규범이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없었으니(5:18-21),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마땅했다. 그는 자기나라를 좋은 포도송이들을 맺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포도밭에 비유하며다.(5:1-7) 저 쓸모없는 포도밭처럼 파헤쳐지고 그 뒤에는 가시덤블과 엉겅퀴만 자라서 귀덮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아모스처럼 이사야도 이른 바 야훼의 날이 심판의 날로서 다가오기를 바라면서(2:6-21), 아시리아를 그 심판의 도구로 보았다(5:26-29) 그는 유다 나라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파멸의 구렁텅이로 던져지고, 주민은 형편없이 줄어 극소수만이 남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고 그 소수의 남은 자들마저 다시 커다란 파국의 불길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선언했다.(6:13)
이사
  • 가격5,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01.29
  • 저작시기2012.1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72644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