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짚어보기 (몽양 여운형 선생과 고하 송진우 선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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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현대사 짚어보기 (몽양 여운형 선생과 고하 송진우 선생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몽양 여운형 선생과 고하 송진우 선생을 중심으로

1910년 경술국치로 한국의 주권이 침탈되고 그 날부터 한국은 식민지국가가 되었다. 길고 긴 세월 36년간의 뼈아픈 고통을 겪고, 일본의 제 2차 세계대전을 무조건 항복으로 마침표를 찍고, 우리 나라는 해방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 우리 민족은 정말 엄청난 수모와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역사를 잃고, 우리 말을 잃고, 우리 혼을 잃고, 우리 나라에서 나는 모든 물건들도 빼앗겨야만 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았던 1940년대에는 밥을 먹는 식기와 교회의 종까지 공출되었고, 남자는 학도병에서 징용, 징병이란 명목으로 끌려나갔고, 여성은 위안부에 소속되어 평생 남을 끔찍한 상처를 지녀야 했다.
이렇게 안타까운 식민지 치하의 세월간에 몇몇은 현실에 투항하려 했고 몇몇은 현실에 순응하려 했고 몇몇은 현실을 도피하려 했고 몇몇은 현실을 등지려 했다. 각자가 자기의 신념에 따라 현실을 맞았다.
그러나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가 입은 고통을 밝히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결국 우리 나라는 식민지 현실과 문제들이 타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또한 38선을 기준으로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을 하고야 말았다. 이는 분단으로 종국을 맞이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관한 연구나 자료들보다 일단 정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있게 한 까닭인, 즉 현재 남한을 구성하고 있는 역사적 원인이나 이유를 야기한 미군정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미군정은 당시 한국에 대한 실정을 잘 몰랐으며, 그러한 이해 부족으로 말미암아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판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분단으로 이끈 요인이 많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는 것 보다 그 상황에서 우리들의 행동은 어땠는지 주로 생각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는 분단되지 않고 단합된 국가로 온건히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 상황을 만들어낸 까닭에는 내적 요인, 외적 요인, 그 밖의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으나 일단은 그 당사자로서 스스로를 먼저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적 요인인 해방 이후 한국인들의 양태를 고찰해봄으로써 앞으로의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역사적인 교훈을 얻는 것이 더 건설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서 설정한 인물은 몽양 여운형 선생과 고하 송진우 선생-언론인으로서의 모습을 중시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둘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로써 이데올로기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에 서서 각자의 신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사람이다.

I. 들어가며 ㅡ 사건 상황을 살피고 역사적 맥락 짚어보기

해방 이후 활동에 대한 의의나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식민지 치하 이들이 처한 실상이나 상황 및 그들의 활동이 어떠했는지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일단 대략적으로 식민지 치하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의 행적과, 언론인으로서 고하 송진우 선생의 행적을 먼저 살펴보겠다. 몽양은 1886년에 태어났고 고하는 1889년에 태어났다. 갑신정변 이후 급변하는 국내의 정세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인 것이다. 각종 일제의 잔악하고 간사한 정책들을 직접 겪은 세대로서 두 분은 일제 치하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독립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다. 대체적으로 시대를 막론하고서 독립운동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무장투쟁론이고 하나는 준비론이다. 일제의 무단 정치 아래 독립의 뜻을 효율적으로 펼치고자 두 분 다 외국으로 나가서 독립운동을 행했다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몽양은 중국으로 가서 수학했고 고하는 일본으로 가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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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13.10.01
  • 저작시기2013.10
  • 파일형식기타(docx)
  • 자료번호#883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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