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종문학분석) 해방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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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8종문학분석) 해방전후에 대한 내용, 줄거리, 해설 및 감상입니당...

본문내용

현은 눈물이 날 지경으로 왕국유의 인격을 우러러보았었다. 그 뒤에 들으니, 왕국유는 상해로 갔다가 북경으로 갔다가, 아모리 헤매어도 자기가 그리는 청조(淸朝)의 그림자는 스러만 갈 뿐이므로,
「綠水靑山不曾改 雨洗蒼蒼有獸間」
을 읊조리고는 편발 그대로 혼명호(混明湖)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청나라를 깨트린 것은 외적(外敵)이 아니라 저희 민족 저희 인민의 행복과 진리를 위한 혁명으로였다. 한 사람 군주(君主)에게 연연히 바치는 뜻갈도 갸륵한 바 없지 않으나 왕국유가 그 정성, 그 목숨을 혁명을 위해 돌리었던들, 그것은 더 큰 인생의 뜻이오니 큰 진리의 존엄한 목숨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일제시대에 그처럼 구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끝내 부지해 온 상투 그대로, <대한>을 찾아 삼팔선을 모험해 한양성(漢陽城)에 올라왔다가 오늘, 이 세계사(世界史)의 대사조(大思潮) 속에 한 조각 티끌처럼 아득히 가라앉아 가는 김직원의 표표한 모양을 바라볼 때, 현은 왕국유의 애틋한 최후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이 아직 차나 어딘지 부드러운 벌써 봄바람이다. 현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회관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은 <푸로예맹>과의 합동도 끝나고 이번엔 <전국문학자대회> 준비로 바쁘고들 있었다.
▶ 줄거리
일제 말기, 현실에 대해 소극적이던 '현'은 살던 집을 세 주고 강원도 산읍으로 들어간다. 식민 정책을 거부했지만, 대동아 전기의 번역마저 거절하지는 못하였다. 시국의 혼란을 피하여 시골로 가서 일제의 감시의 눈을 피해 낚시로 소일하다가, 그 곳에서 김 직원을 만나 교우한다.
마침 문인 보국회에서 주최하는 문인 궐기 대회에서 자신이 연설할 차례가 다가오자 대회장을 빠져나온다. 일 년도 길어야 일 년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문학을 반성한다. 이럴 즈음 주재소에서는 출두를 명령하여 각종 시국 집회에 참석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서울 친구의 전보를 받고 상경하던 '현'은 일제의 패망과 조선 독립의 소식을 듣는다. 17일 새벽에 서울에 도착한 그는 서울의 여러 정황에 불쾌해 한다. '조선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를 찾은 그는 그들의 선언문을 읽고 발기인으로 서명한다. '현'은 '조선 인민 공화국 절대 지지'라는 현수막 사건을 통해 자기 비판과 함께 정세를 판단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프로 예맹'과의 통합을 계획한다.
좌익과 우익의 반탁, 찬탁 데모로 어수선한 가운데 김 직원이 다시 나타나 서울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를 보며 '현'은 중국의 문인 왕국유(王國維)를 생각한다.
▶ 작품 해제
갈래 : 단편 소설(중편 소설)
배경 : 해방을 전후한 1-2년 서울과 철원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일제 치하의 한 문학인의 갈등과 그 행로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1946년 <문학>에 발표된 중편 소설이다. 해방을 전후하여 1·2년 간 서울과 철원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문단의 상황은 물론, 작가 자신의 행적을 그린 작품이다. 해방 후에 나타난 지식인의 이념적 갈등을 주제로 하여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현실을 비판적 안목을 통해서 서술한 글이다.
일제 강점기에 붓을 꺾고 낙향했던 주인공 '현'과 향교 '김 직원'의 삶의 한 방식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 조선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태준의 자서전적 소설로, 순수 문예지인 <문장>을 주재했던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실천에 몸담는가를 보여 주는 한편, 좌익 문단의 모체가 되었던 문건의 성립 과정 및 지향의 일단을 잘 드러내 주고 있어 주목되는 바 있다. 다시 말해, 보다 좌익 성향인 프로 예맹과 우익측의 중앙 문화 협회에 비하면 문건은 중도적 성격 및 지향을 지닌 것이었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 작가 및 작품 소개
이태준(李泰俊, 1904- ?) 는 상허(常虛), 필명은 상허당주인(常虛堂主人). 1904년 11월 7일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했다.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으나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했다. 1925년 단편 <오몽녀>를 [시대일보]에 발표, 등단. 1927년 동경 죠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고 1928년 중퇴했다.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문장』을 주관하기도 했다.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5년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946년 10월경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고 과거를 추궁받았으며 1956년 숙청당했다.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이태준의 작품들로는 1925년 <시대일보>에 "오몽녀"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지만, 1933년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물에 대한 내면적인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기법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달밤", "가마귀", "영월영감" 등의 작품은 허무와 서정의 세계 속에서도 시대정신에의 강렬한 호소를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다. 해방 이전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띠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낸다.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면서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던 것이다. 1943년 "왕자 호동"을 끝으로 절필하고 강원도 철원에 칩거하던 그는 해방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에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해방 전후"는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중 종군기자로 전선에 참여하면서 쓴 "고향길"이나 "첫 전투" 등은 이데올로기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일제하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 밖에 국어 문장 작법에도 관심을 기울여 <문장 강화>라는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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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격3,300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2.06.19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6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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