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 사상 : 신라 불국토사상의 전개양상과 역사적 의의
본 자료는 9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해당 자료는 9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9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불국토 사상 : 신라 불국토사상의 전개양상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제1장 사원의 창건과 불국토사상-칠처가람을 중심으로
1. 칠처가람의 창건
2. 칠처가람의 추이
3. 칠처가람설의 성립--과거불인연설로서
1) 과거불인연설의 수용
2) 과거불인연설의 확대--칠처가람설의 성립

제2장 조탑·조상연기설에 나타난 불국토사상
1. 황룡사구층탑 건립 연기설
2. 황룡사장륙상 건립 연기설
3. 천관산 아육왕탑

제3장 진신상주신앙과 다불신앙
1. 진신상주신앙
1) 낙산신앙
2) 오대산신앙
3) 천관산신앙
2. 다불신앙

제4장 불국토사상의 의의
1. 종교적 의의
2. 정치적 의의
3. 영토론적 의의

본문내용

만나 그로부터 건탑이 곧 호국의 효능을 가져오는 것임을 부촉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장륙상은 처음 조성된 것은 진흥왕 때였지만 여기에 아육왕 관련의 인연설로 수식을 가한 것은 자장에 의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자장은 당에 유학하면서 당시 수 통일 이후 당초에 걸치면서 강력한 왕권을 지지하는 국가불교의 모습을 목도하고 돌아왔다. 아울러 계율 중심으로 불교계를 통제하고 불교를 보다 체계화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중국의 불교를 관찰하고 배움으로써 신라 불교의 당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불교의 진보적 수용자였던 것이다. 자장 불교의 이러한 성격은 신라사회에서 당시 불국토설 수용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천관산의 아육왕탑 건립연기설은 신라 말기에 반도의 서남 해안지역에서 발견되는 건탑연기설의 예이다. 이 설은 진신상주의 신앙과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불국토설의 전개에 따라 처음 왕경 지역에서 주장되던 불국토설이 지방으로 확산된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경우 또한 여러 유형의 불국토설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현상도 보여준다.
진신상주신앙은 불보살의 진신이 현세 우리 국토에 상주한다는 것으로 과거불 인연설의 불국토사상에 비해 적극적 측면이 있다. 신라에서 진신상주 신앙으로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낙산신앙, 오대산신앙, 천관산신앙을 들 수 있다. 낙산신앙에 관해서는 의상이 현재의 강원도 낙산을 관음 주처로 설정하였다는 기존의 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료상의 문제도 언급하였다. 즉 현전 자료는 낙산 신앙이 의상 불교 이후 시기에 해당하는 80권 화엄경 에 의해 설정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해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대산신앙은 그 도입자가 자장이라는 설에 대해서 현재 학계의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필자는 자장은 오대산이 문수의 상주처라는 것을 인식하였지만, 삼국유사 를 통해 현전하는 오대산 신앙의 모습이 형성된 것은 역시 하대의 일로 생각하였다. 현전 오대산신앙에는 밀교적 요소가 짙게 개입되어있고, 문수보살을 중심하여 신라의 신앙전통이 가미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당의 징관의 오대산신앙 체계와 비교하므로써 드러날 수 있었는데, 신라가 당의 불교를 수용하면서 자신의 체계로 이를 재편하는 특성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천관산 신앙은 천관보살이 지제산에 상주한다는 신앙인데 이 경우 역시 과거불인연설과 융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신라 말기 지방에서 일어난 현상의 하나였을 것이다.
위의 진신상주 신앙의 경전 근거는 모두 화엄경 <보살주처품>이다. 이것은 화엄경 이 신라 불국토사상의 전개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준 경전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음신앙의 경우 이전 법화경 <보문품>에 의한 신앙으로서 널리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나, 낙산의 관음신앙의 경전 근거는 화엄경 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현세의 신라가 곧 불국토라고 하는 인식이 신라불교에 있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화엄경 을 중심한 교학의 발전은 신라 불국토사상이 과거세와의 인연설, 현세의 진신상주설의 모습으로 불국토를 제한하는 데 그칠 수 없는 사상적 발전을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부처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되는 존재가 아니라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언제든지 현신함을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처는 곧 마음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국토는 공간 상의 어느 지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곧 중생의 세계를 초월한 것이 아니라 중생의 국토가 그대로 불국토인 것이다. 이는 대승교학의 깨달음의 궁극점인 것인데, 신라 중대 원효, 의상은 불신과 관하여 이러한 이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하대의 금석문 자료는 석가불과 비로사나불을 동체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신라에서 대승교학의 이해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불국토사상의 발전은 신라 사회에서 일정한 의의를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종교적 의의, 정치적 의의, 영토론적 의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종교적 의의로는 불교의 수용과정에서 재래의 신앙과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감소하는 역할, 불교가 타 종교 보다 유원한 인연을 지닌 종교임을 주장함으로써 그 수용을 정당화하는 역할 등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교화의 종교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케 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다음은 정치적 의의이다. 불교 수용 초기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왕실과 이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대립하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 때문이었다. 불교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인연설을 통해서 왕권의 정당화 이념을 제공하였다. '왕즉불'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왕즉불'은 왕이 불 또는 고대의 이상적 제왕의 현현이라는 사상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것이었다. 왕권을 지지하는 승려는 황룡사 9층탑 건립과 같은 왕권을 과시하는 대규모의 불사가 문수보살의 부촉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불국토사상이 가지는 정치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대의 왕실이 '7처가람설'의 과거불인연설을 중시한 것에도 정치적인 동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국토설이 중앙의 세력들에 의해서만 독점될 것은 아니었다. 하대에 지방에 근거를 둔 승려들에 의해 불국토설이 주장되어졌으며, 지방의 유력한 세력들은 이를 뒷받침하였다. 오대산신앙과 김주원계 세력의 연결, 천관산신앙과 청해진의 장보고 세력의 연결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지방의 세력가들은 자신의 근거지가 진신상주의 신성지역이라고 하는 것이 지니는 정치적 효과에 주목하였을 것이다.
불국토사상은 신라의 영토가 확대됨에 따라 변화하는 영토의식을 반영한다. 왕도 중심의 국토 인식 단계로부터 통일된 국토에서 특히 군사적, 교통상 중요성이 깊은 지역의 범위가 확대되는 과정과 불국토사상의 성격도 확대되었다. 국토의 지정학적 조건상 중요한 지역이 불보살 진신의 상주처로 인식된 것은 그러한 성격을 보여준다. 오대산신앙, 천관산신앙이 그 예이다. 이들 불국토사상이 이 지역 중심으로 성장한 세력과 밀접히 관련되는 현상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키워드

신라,   삼국시대,   불국토,   석굴암,   ,   불교,   부처,   사상
  • 가격3,000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06.01.21
  • 저작시기2006.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439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