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 기행문][경주일대 답사 기행문]경주와 경주일대 답사 기행문(경주와 남산, 삼릉골마애선각육존불상, 칠불암, 석굴암, 기림사, 신문왕릉, 불국사, 천마총, 경주 첨성대, 안압지, 황룡사지, 기행문,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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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 답사 기행문][경주일대 답사 기행문]경주와 경주일대 답사 기행문(경주와 남산, 삼릉골마애선각육존불상, 칠불암, 석굴암, 기림사, 신문왕릉, 불국사, 천마총, 경주 첨성대, 안압지, 황룡사지, 기행문, 경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경주와 남산

Ⅱ. 삼릉골마애선각육존불상

Ⅲ. 칠불암

Ⅳ. 석굴암

Ⅴ. 기림사

Ⅵ. 신문왕릉

Ⅶ. 불국사

Ⅷ. 천마총

Ⅸ. 경주 첨성대 (국보 제31호)

Ⅹ. 안압지

Ⅺ. 황룡사지(皇龍寺址)

Ⅻ. 용장사(茸長寺)

본문내용

연결되지 않고 독립된 상태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황룡사의 가람배치가 전혀 새로운 형태였음이 밝혀져 지금까지 막연히 추정해왔던 것을 바로잡게 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4만여점에 달하며, 이 중 각 시대에 만들어져 사용된 와전류(瓦塼) 가운데 특히 측면에 용을 새긴 보상화문전(寶相花文)은 지금까지 출토된 예가 없는 우수한 작품이다. 금속류로서는 금동제불상?풍탁?금동제귀걸이?청동거울 등이 수습되었으며, 이중 금동 불상 1점은 높이 10cm에 지나지 않으나 여래입상으로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우수함과 아울러 도금이 매우 찬란하고 화려하다. 또한 황룡사장륙상을 연상시키는 높이 20.1cm의 금동불입상과, 현존한다면 한국 최고걸작의 반가사유상으로 평가될 복스럽고 천진난만한 표정의 높이 8.3cm의 금동보살 불두(佛頭)가 있다. 목탑지의 심초석 아래에서 수습된 백자의 작은 항아리는 당나라의 작품으로 밝혀져 당시의 문물교류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발견된 사리 장엄구에서는 금제합, 명문판 염주, 청동방함, 은합 등이 나왔다. 한편 황룡사 강당자리 북동쪽에서 출토된 높이 182cm, 최대 폭 105cm의 대형 치미(?尾)는 우리 나라는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유례가 없이 큰 것이다. 이렇듯 거대한 치미가 사용된 건물이 얼마나 웅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치미는 워낙 크기 때문에 한번에 굽지 못하고 아래위 둘로 나누어 만들었는데 가운데에 아래위를 끈으로 꿰어 묶었던 구멍이 있다. 양쪽 옆면과 뒷면에 교대로 연꽃무늬와 웃는 모습의 남녀를 엇갈려 배치한 것은 그 유례를 살펴볼 수 없는 독특한 장식이다.
또한 현재 국내에 전해지고 있는 범종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는 성덕대왕신종보다도 무려 4배나 크고 17년이나 앞서 주조된 대종이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권3에 전한다. 현존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일 뿐만 아니라 조형미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라 할만하다.
신라 문화 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성지이며, 호국불교 사상의 구심체이자 신라 호국불교의 대가람이었던 황룡사, 225척 높이의 구층탑은 경주분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 옛날의 그 찬란했던 문화를 말해주는 황룡사의 터, 실로 역사의 무상함을 맛보게 하는 풍경이다.
. 용장사(茸長寺)
경상북도 경주군 내남면 용장리 남산(南山)의 서쪽 산중턱에 있었던 사찰. 민족항일기에 이 계곡을 발굴조사 할 때 용장사라고 쓴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확인되었다. 용장골 어귀에 있는 마을 이름이 용장리이고 계곡 이름도 용장골이니 모두가 용장사에서 기인된 이름들이다. 용장사는 이 계곡의 주인격일 뿐 아니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는 대가람이었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유가종의 고승인 대현(大賢)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이 절에 있는 장륙상(丈六像)의 주위를 돌며 예배하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한다. 또 조선 초기에는 말년에 승려가 된 김시습(金時習)이 이 절에 기거하면서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썼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용장사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절터에는 보물 제187호인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산재하고 있다. 원형불상대좌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수려한 작품이다. 상호(相好)는 단아하고 머리에는 나발이 선명하며 의문(依文)은 가는 평행선으로 음각하였다. 이밖에도 삼층석탑의 위쪽에는 폐탑(廢塔)이 있으며, 용장사계가 끝나는 산꼭대기 바위에는 거대한 불좌가 있다. 자연암석 위에 연꽃을 새긴 것으로 지름 1.5m, 둘레 5.5m이다.
(1)용장사계석조약사여래좌상(茸長寺溪石造藥師女來坐像)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약사여래좌상. 높이 1.1m. 경주 남산 용장사계(茸長寺溪)에서 옮겨온 것으로, 머리와 광배(光背)가 절단된 것을 복원하여 현재는 광배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우견편단(右肩偏袒)을 하고 왼손에 약호(藥壺)를 든 전형적인 약사불좌상으로 이러한 계통의 불상양식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 대표작이다. 얼굴은 부푼듯하면서도 힘을 느끼게 하여, 인도 굽타기 마투라 불상의 얼굴과 친연성이 느껴진다. 또한 신체는 가슴이 유난히 발달되고 어깨도 건장하며, 옆구리의 옷주름이 강건하게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특징도 굽타기 마투라 불상의 특징과 닮은 점이 있다. 대좌는 상대, 중대,하대로 구성되어있는 팔각대좌로서, 하대는 2단의 각형(角形)받침 위에 단엽복판(單葉覆瓣)의 연화문을 조각하였고 중대는 각면의 모서리에 우주(隅柱)를 조각하였을 뿐 별다른 조식이 없으며, 상대는 양련안에 둥근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적이다. 광배는 거신광에서도 보이고 있다. 광배는 거신광으로 안에는 두 줄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내부를 당초문으로 가득 채웠다. 또,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을 화려하게 조각하여 전체적으로 장식성이 강하다. 8세기 신라불상들에 유행한 형식적 특징과 인도 마투라 불상과의 친연성이 깊은 작품으로 특히 주목된다.
(2)용장사지 삼층석탑
보물 186호. 용장사지 동편 능선 위에 자리하여 이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 탑은 현재 3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가 4.5m이다. 높이 200m가량 되는 산의 바위를 하층기단으로 삼은 점이 신라인의 자연과의 조화 방법을 잘 나타내 준다. 아마도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에 탑을 세운 듯 하다. 바위에 6Cm정도 되는 괴임을 2단으로 마련하고 기단의 한 면은 1석으로 나머지 3면은 2매의 석재로 결구 시켰다. 탱주가 1주이다.
위에는 옥신괴임이 2단 마련되었고 2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갑석정연이 있다.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 옥신은 1층에 비해 체감 효과를 크게 주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꾀했다. 옥개받침은 모두 4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상면에는 옥신괴임이 2단씩 마련되어 있다. 상륜부는 모두 유실되어 없고 삼층 옥개석 가운데에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은 1922년에 도괴 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2층 옥신 상부에 방형사리공이 있었다 한다. 신라하대인 9세기 이후 작품으로 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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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14
  • 저작시기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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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8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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