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무의 용도는 평시에 물을 담아 놓음으로써 화재 때와 같은 유사시에 이용하고자 하는 재난 대비용이며, 실질적인 화재 발생 시에 과연 얼마나 큰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사실은 화재 발생 시에 화재 진압용이 라기 보다는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들무에 물을 채워 놓으면 화마를 쫓아주기도 한다는데, 이것은 화마가 들무에 담겨진 물에 비친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는 도망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난 대비에 관한 시설에서도 조상들의 해학과 재치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대조전을 나오면서 역시 임금님과 중전이 머물렀다는 곳인 만큼 아름답고 정교하며 왠지 엄숙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3. 발길을 돌리며
- 그저 과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을 들여놓았던 창덕궁에서, 나올 때는 작은 여행을 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과제 생각에 제대로 관람을 하지 못했던 나는 중감쯤 관람이 지났을 때는 이미 과제를 잊고 안내원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곳저곳 감상하기에 바빴다. 덕분에 아름다운 궁궐을 감상하느라고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많이 힘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을의 끝 무렵에 이렇듯 아름답고 뜻 깊은 궁궐을 관람한 것이 나의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줄 만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 살았었고, 마지막 왕족들이 살았던 창덕궁은 내가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을 때는 더 이상 비어있는 궁궐이 아닌 왕의 호령소리가 들릴 만큼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궁궐이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