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본 예수) 예수의 경제 의식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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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들어가는 말

Ⅰ 예수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 -경제적 상황을 중심으로

Ⅱ 예수의 경제 의식(Economic Consciousness) -하나님 나라를 중 심으로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2.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다.
3. 하늘의 보화가 존재한다.
4. 모든 것은 함께 나누어야 한다.

■ 나오는 말

■ 가. 영성 : 가난해지기 위한 투쟁
Ⅰ 서론
Ⅱ 본론 1. 맘몬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
Ⅲ 본론 2. 가난이란?
Ⅳ 본론 3.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난
Ⅴ 본론 4. 현대사회에서의 가난의 실천

■ 나. 영성 : 가난한 이들을 위한 투쟁

■ 결론

본문내용

론과 실천의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이 교회 변두리에서 특히 제 3세계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기초공동체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공동체들과 교회냐의 전통적 수도단체들을 분리시키는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이 공동체들은 자기네가 예고하는 미래의 본보기로서, 이 가난을 자기네 자신의 실험적이라는 상징적 차원을 넘어서 국제정의의 영역까지 확대되는 개념으로 확대된다. 그들은 맘몬이 단순히 무질서한 애착 이상의 것임을 간파하고, 내성적 분별에 의해서만 그 실상이 폭로됨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빈곤이 '조직화된 탐욕'의 결실이라고 본 까닭이다. '두 개의 깃발에 대한 묵상'에서 이냐시오는 맘몬의 체제가 그 기만적 수법으로 "어떠한 지방이나 장소를 막론하고 또 어떠한 신분이나 환경에 있는 사람도 빠짐없이 온 세계의 모든 곳에" 퍼뜨려져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영성수련>141항).
자기분석만 가지고는 현대의 맘몬의 전략을 식별하는 데 부적절하다. 사회분석이 그것을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몽고의 라마승들은 각자가 독방에서 엄격한 규율생활을 하면서도 방대한 토지를 공동소유 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농민들의 실제적 가난을 덜어주기 위해 '자발적'가난을 실천하도록 강요하였다.
역사상으로 어떤 수도집단이 가나의 서약으로 묶여 있으면서도 폭력적인 사태가 발생한 뒤에서야, 상식적으로나 자기네의 수도적 감각으로 기왕에서부터 실행해 왔어야 할 바를 실천하기 시작한 예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자발적으로 포용한 가난이든 제도적으로 부과되는 가난이든간에) 가난의 사회학적 지각이 인류의 종교전통에 충분히 동화되지 못한 소치이다. '영성'에 대한 전통적인 교회의 이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노력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투쟁에 결부시키고자 교회 교도권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사도적 권고<수도생활의 쇄신>에서 교황 바오르6세는 바로 이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 복음적 가난은 안류의 양삼을 일깨워 가난한 이들(의 투쟁)에 튄하고 연대감을 갖고 나서 사회정의의 요구를 간파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교황은 선언하였다(18항).
영성이라는 것이 하느님을 찾는 모색이라면 이 글의 첫머리에 나온 성서적 공리 두 가지에서 시선을 떼면 안된다.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들과 계약을 맺으신 사실에서 하느님 대 맘몬의 이율배반을 파악한다면, 하느님은 분명히 압제받는 사람들에게 편중하신다. 하느님은 '가난한사람들의 투쟁'을 곧 당신의 투쟁으로 삼아 그것이 곧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투쟁이 되게 하신다. 하느님이 교만한 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과 부자들을 위한' 투쟁이 되게 하신다. 하느님이 교만한 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과 부자들을 상대로 벌이신(루가1,51-53)그 투쟁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의 가난이 우리를 충동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기울이시는 하느님의 관심을 곧 우리의 사명으로 삼는 그 정도에 따른다.
누구든지 하느님을 모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고자 한다면 영웅이 되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 승리가 확실하다고 예수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그 깃발의 종점은 ‘범죄인의 운명’곧 십자가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낮지 못한 법이다. 스승이 압제의 희생자이자 심판자가 되셨다면(마태 25,31-46) 제자도 현 체제의 희생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투쟁은 가난한 사람들 또는 가난해진 사람들에게만 지워지는 사명이다.
■ 결 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셨다. 그리고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을 더 많이 사랑하셨다. 친히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놀랍게도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은 받으려 하지 않고 저마다 모두 맘몬에 홀린 듯 부자가 되려는 소원을 갖고 산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Kosmos의 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맘몬의 영에 홀려 서로를 시기하고 서로의 것을 빼앗으려하는 Khaos적인 세계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일찍이 행복한 삶에 대한 고백을 이렇게 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1)
이 경지가 바로 행복의 경지에 이른 신앙인이다. 이 땅에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데, 그것은 뭔가 지금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롬3:13)의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열린 무덤’이란, 마치 무저갱처럼 끊임없이 빨려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무리 집어넣어도 만족할 수 없는, 채울 수 없는 곳이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의 비극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며,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벌어들인 것에 대해 맘몬의 유혹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만족하여 저보다 부족한 자들을 위해 스스로 가난해질 줄 아는 하나님의 자식이 되어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모두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참고 문헌 )
저자 : 예향 교회 김중만 담임 목사
1989년 기독신문
저자 : 박요한, 두올, 박 머르코 신부/편집:엄요한
2005년 12월
기독교 경제학 / 김세열 / 도서출판 무실 /1993년
하느님의 경제학 / M.더글러스 믹스 / 도서출판 한울 /1999년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 김영봉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3년
가난한 자와 함께하는 선교 / Bryant L.Myers /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년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 Ronald Sider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4년
출처 : 엠파스 블로그 <이준구의 희망찾기>
[논문] 성 프란치스코가 추구했던 가난/함 혁 프란치스칸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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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1.10
  • 저작시기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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